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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이 봄날엔 물빛 감성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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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을 잃고 노는 아가처럼 심중에 어린아가를 모시고 사는 일! (모슬포 송악산 해변에서)
넋을 잃고 노는 아가처럼 심중에 어린아가를 모시고 사는 일! (모슬포 송악산 해변에서)

3월, 이 봄날엔 순결한 어린아이의 감성으로 물빛 봄이 되자, 여린 싹이 되자, 순결한 봄의 눈빛이 되자, 다윈이 고백한 것처럼, 한 존재에게 있어서 인간의 순결한 정서적인 요소와 도덕적 인격까지 제거되고 만다면 이런 인간은 틀림없이 ‘거대한 기계’의 논리 속에서 기능적인 존재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찰스 다윈은 그의 자서전에서, 나는 30세가 될 때까지 음악과 시와 그림을 매우 좋아했는데, 그 이후로는 그런 즐거움에 대한 취미를 잃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 내 머리는 수많은 사실 가운데서 일반적인 법칙을 끌어내는 일종의 기계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렇게 즐기던 취미의 상실은 바로 참 행복의 상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성의 정서적 요소를 감퇴시킴으로써 지성에 해를 주었으며, 나아가 도덕적 인격에까지 손실을 끼쳤던 것 같다.>

 

인간의 퍼스낼리티를 상품으로 치환하는 시장적 성격이 강한 자들은 인간을 상품으로, 교환가치로 평가하려 한다. 인간 존재에 대한 숭고한 존경이 약하다. 사소한 것에도 그 아름다움에 놀라고 감탄하는 어린아이의 감동과 감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는가, 인간은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에 거의 관심이 없다. 진정한 자아와 동일성의 감각을 가지지 못한다.

현대사회가 동일성의 위기에 처하여 인간소외가 가속화하는 것은 이 사회의 구성원들이 본래의 자아를 상실하고 하나의 도구(수단, 기능)로 전락함으로써 빚어진 결과가 아닐까.

 

봄을 아는 꽃의 마음처럼&#44; 그렇게&#44; 그렇게&#44; 살 수 없을까! 봄보다 먼저 봄을 사는 꽃처럼...
봄을 아는 꽃의 마음처럼, 그렇게,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봄보다 먼저 봄을 사는 꽃처럼...

찰스 다윈이 고백한 것처럼, 한 존재에게 있어서 인간의 순결한 정서적인 요소와 도덕적 인격까지 제거되고 만다면 그런 인간은 틀림없이 거대한 기계의 논리 속에서 기능적인 존재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그들이 활보하는 세상은 인간의 얼굴이 사라진 곳이 될 것이다. 순전히 과학과 기술에 의존하고 논리적이며 조작적인 지성이 초래할 비극은 정말 끔찍하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의 미혹에서 벗어나 자연과 교감하며 자연친화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일을, 시나 소설이나 연극이나 클래식 불후의 고전 작품 영화 등 아름다운 미를 구현한 예술세계를 탐색하는 일을, 경건한 신앙생활을 통해 과학과 기술을 무기로 삼아 인간도 전능한 신'(?)이 될 수 있다는 착각과 교만(이때 인간은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그 노예가 되고 만다)에서 깨어나는 일을, 영적인 자유 해방 무소유 해탈 기쁨 감사 긍정의 언어를 회복하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것!
한 마음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것!

일상의 작고 하찮은 것에서도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줄 아는 어린아이의 감동과 감성을 반드시 회복해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물질은 결코 인간을 영원히 구원할 수 없으며, 눈에 보이는 물질과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인간 존재를 결코 행복의 문으로 인도할 수 없는 까닭이다.

 

(사니랑의 모슬포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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