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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 남한산(성)을 걸어왔다. 12000보 계단을 걸은 것이다.
이 맘 때면 어디를 가도 산은 천국이다.
최적의 아늑한 봄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산의 숲이다. 일 년 중 산천의 초목이 가장 아름다울 때이니까...
천자 만홍 千紫萬紅! 춘풍 가절 春風佳節! 화란 춘성 花爛春盛! 만화 방창 萬化方暢!
( 이 네 글자의 울림, 이 말의 형상, 그 의미를 한 번 음미해보라! 봄이 살아 꿈틀하는 말의 울림)
언제 들어도 그윽한 산에서 우는 까마귀 소리는 마음 저류를 훑는 힘이 있다. 약간의 애수와 비애의 살얼음,
아물어가는 기억의 상흔을 헤집는 낯선 찬바람 같은 느낌,
더욱이 해거름 서산이 붉게 물들 때면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비원, 그 깊은 데까지 상념의 외길을 홀로 걷게 한다.
남한산이든 지리산이든 오대산이든 까마귀 울음소리 피어오르는
잿빛 산길을 걷노라면, 이를테면 서정적 긴장에 쉬이 감싸인다.
객관물과 시적동화가 일어난다고 할까, 내 안에서도 금세 새 한 마리가 우는 소리 들린다.
서서히 나는 새가 되고 새는 내안에 들어와 ‘스티뮹(Stimmung, 정서적 울림)’의 도취, 환몽에 이른다.
마음의 웃고름 절로 풀리고 대상과 나는 서정적 융합 합일 융일 해조의 화음에 도달하고 만다.


20230413, 솔물새꽃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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