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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참다운 교육은 '선한 방목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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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다 다르다. 각기 다른 생명성을 지닌 화초들이 자기만의 향과 체취를 지키도록 가만히 바라봐야 한다.
한결같이 다 다르다. 각기 다른 생명성을 지닌 화초들이 자기만의 향과 체취를 지키도록 가만히 바라봐야 한다.

'설명이 많은 교육'은 아이들의 통찰과 상상의 힘을 키워주지 못한다. 서두르지 않고 아이들 곁에서 느긋하게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다. 아이들이 어떤 대상과 현상을 보고 스스로 오래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는 일이 선한 방목의 교육이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타인에 의한 과도한 배움과 가르침에 노출되어 있다. 심지어 아이들 스스로 되새김질하여 배운 것을 음미하고 소화할 여유마저 없다. 그래서 요즘 우리 아이들은 ''이 자주 난다. 과잉의 가르침에 중독된 아이들과 외부에서 주입해 준 정보에 맹목적으로 의존하는 아이들, 자기만의 새로운 대안을 만들지 못한 채 수렴적사고收斂的 思考에 길들어진 아이들이 넘쳐나고 있다. 스스로 소화능력이 떨어진 아이들이 많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세계와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지낸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겠다는 교육의 명분으로 무조건 쏟아붓는 열정과 교육적 투자가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듯이 헛된 수고로 끝나고 마는 일이 허다하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풍요로운 교육의 기회와 아이들을 잘 가르쳐 보려는 열정이 우리의 귀한 아이들을 머리 큰 '고급스러운 바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세계는 다양한 움벨트를 가진 존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아이들도 모두 천차만별의 변별성을 지닌 오묘한 생명체인데, 그 고귀한 천부적 잠재성을 드러내고 발산할 수 있는 어떤 교육적 배려도 제공받지 못한 채 본연의 ''를 찾을 기회를 잃고 있다. ''를 잃어버린 아이들, 주체적 자아로 스스로 설 수 없는 아이들, 우리 교육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고 나야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에 눈뜨게 될까.

 

오늘날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가장 심각한 병인은 '못 배워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배워서', '지나치게 많은 교육'이 그 원인이다. 다시 말하면, 교육의 과잉 공급과 틀에 박힌 기계적 교육환경이 아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자연의 흐름에 따라서 성장하고 변화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고 스스로 자신을 키워갈 기회를 갖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들만의 ''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의 촉수와 감성으로 다양한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그리고 아이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타고난 천성을 발현할 수 있도록 선한 방목放牧을 하는 기다려주는 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문학, 특히 시나 소설을 읽고 감상하는 일은 청소년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글 읽는 힘을 키우고 감성의 문을 열어주는 일은 문학이 최적이다. 문학 수업은 아이들 스스로 시나 소설을 읽고 감상하여 심층의 의미를 상상하도록 이끄는 일인데, 이 문학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감성과 생각하는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단의 문학 수업은 평가에 얽매여 교사는 아이들이 감상할 틈을 주지도 않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아이들은 교사의 설명을 받아 적고 외운 다음 문제를 풀이하는 것으로 문학 수업은 끝이 나고 만다. 틈을 내서 책을 읽도록 유인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국어, 문학, 독서 시간에도 오직 수학에만 몰입한다. 이를 아파하는 아이들도 선생도 없다. 책을 읽히려는 교사도 거의 없다. 교육현장의 평가(객관식 오지선다형의 중간, 기말고사에 의한 평가)는 우리 아이들의 읽는 힘생각하는 힘을 키울 기회를 박탈한 가장 두려운 장벽이다.

 

진정한 문학 수업은 소설이나 시를 가르칠 때, 교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상상하고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문학작품을 읽는 안목을 갖도록 작품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준비하고, 학생은 작품을 혼자서 읽고(소설은 교과서에 수록한 것이 아닌 소설 원작을 구입해 전편을 반드시 다 읽어야 함.) 교사가 제시한 질문에 답을 고민하고 서술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교사는 상세한 설명보다는 말을 아끼고, 느리게, 서두르지 않고 아이들의 감상안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무엇보다 교사의 인내와 방목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배울 기회를 많이 갖지 않은 아이들이, 교사의 친절한(?) 설명을 듣지 않고 스스로 읽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상상하고, 생각하고, 발견한다는 역설의 진리는 놀랄 일이 이미 아니다.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교육은 아이들을 망친다. 아이들이 조금 늦더라도 스스로 읽고 감상하도록 묵묵히 참고 기다려주는 일이 부모와 교사에게 급선무다.

 

(솔물새꽃의  교정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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