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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풀아, 풀아, 풀아,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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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아, 풀아, 풀아, 미안해...!
풀아, 풀아, 풀아, 미안해...!

풀아, 풀아, 풀아, 고마운 풀아, 많이 많이 미안해, 나를 용서해다오!

봄 햇살에 기지개를 켜며

파릇파릇 꿈틀 하는 풀꽃의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흙이 있는 곳 어디면 날아와 풀의 숲을 일궈놓고 나를 반기는 풀아

동산 초원의 들풀 곁에 가까이 다가가 풀의 생기를 호흡한다,

 

이 많은 들풀이 오십여 년 반평생이 훌쩍 넘도록 마음 의지할 곳 없는 서울에서

이 수많은 들풀이 나와 함께 봄을 살아준 고맙고 다정하고 인정스러운 나의 벗이었다니

생각하면

그 정회와 감회가 깊고 새롭기만 하다, 풀아 풀아 풀아, 고마운 풀아, 날 용서해 줘...!

아니, 내 인생의 길에 그 누구와의 인연이,

그 어떤 세상 즐거움이 이보다 더 진지하고 순수하고 정직하였으랴,

누구나 혼자서는 온전한 존재로 살 수 없듯

집 앞 동산의 모든 나무와 새와 들풀은 나와 아내와, 나의 아들과 딸과,

점과 점으로 긴밀히 연결된 인연이었다,

나의 생애의 길이요 길벗이요 나의 강 건널 때마다 노둣돌이 되어주었다,

 

해마다 봄을 일깨워준 저 거룩한 몸짓들 숭고한 흐름들...!
해마다 봄을 일깨워준 저 거룩한 몸짓들 숭고한 흐름들...!

해마다 봄을 일깨워준 저 거룩한 몸짓들 숭고한 흐름들,

준동하는 초목의 생기로 나와 나의 가족은 살아왔다,

봄의 위의威儀를 가르쳐주고 우리에게 봄을 살게 하였으며 자연의 길이 사람의 길임을 말없이 보여준 풀!

들풀과 나무와 새와 숲의 바람과 하늘과 구름....

얼마나 고마운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구나,

우리가 들풀의 고마움을 잊고 들풀과 친밀하게 호흡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어리석음이요, 우리의 오만이요, 우리의 심각한 무지일 것인데, 

우리의 본래 성정을 지키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조화의 길에서 멀어지고 말았는지 못내 쓸쓸하구나,

 

저 들풀의 역사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이리라!
저 들풀의 역사는 인간보다 훨씬 더 오래이리라!

동산의 모든 초목은 사실 우리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오랫동안 해와 달과 바람의 길을 따르며 섭리대로 살아온 우리보다 훨씬 위대한 존재들이다,

은행나무와 벚나무와 갈참나무와 소나무와 느티나무, 내가 이름 모르는 수많은 초목들,

목련과 모과나무와 느릅나무와 진달래와 개나리와 쥐똥나무와 밤나무와 애기단풍나무를 보아라,

모두가 우리의 대선배요, 우리의 스승이요, 우리의 벗이다,

말없이 사시장철 자연의 길일깨워준 우리의 인도자인 것이다

우리가 언제나 동산의 초목 앞에 겸손히 다가가, 풀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초목의 이름을 불러주고 우리의 생각을 다듬어 사랑의 말을 전해주고 미안한 마음도 고백한다면 

동산의 초목과 들풀은 아마 신바람이 나서 우리를 더 사랑해 줄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들이 한없이 무궁무진 베풀어준 은총과 가르침에 감탄할 때,

들풀과 나무와 새와 도랑물의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슴에 간직할 때

순종하는 마음도 사랑하는 마음도 연민과 감탄의 물빛 마음도 회복되지 않을까,

 

들풀과 나무와 새와 도랑물과 아가의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슴에 간직할 때 세상은 더 맑아지리라...!
들풀과 나무와 새와 도랑물과 아가의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가슴에 간직할 때 세상은 더 맑아지리라...!

나의 서울 오십여 년의 아주 오랜 벗, 나에게 늘 깊은 위로와 초연한 의지와 모진 인내를 가르쳐준 풀!

오늘은 너그러운 풀에게 다가가 고백하고 싶다, 공원 동산 나무와 들풀과 새들에게 다가가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까치에게도 비둘기에게도 참새와 동박새에게도, 간혹 까마귀에게도 민들레에게도 다 자라 버린 전나무와 흰자작나무에게도 가까이 다가가 나의 그늘이 되어준 은혜를 전하고 싶다,

 

풀아, 미안~, 그동안 고마웠어~, 많이 많이 사랑해~

 

풀아, 꽃아, 미안~, 그동안 고마웠어~, 많이많이 사랑해~!
풀아, 꽃아, 미안~, 그동안 고마웠어~, 많이많이 사랑해~!

 

4월 - 김삼규

 

산에는

진달래꽃

들에는

자운영,

 

청보리

넘실넘실

남풍이 오

어서 오마!

손 흔들며

저자 가신

울 엄마,

 

삐비꽃 

손에 쥐고

마중 간다

엄마 보러,

 

해마다 그 자리 어디쯤 자운영은 약속처럼 찾아와 호젓이 나를 기다린다!
해마다 그 자리 어디쯤 자운영은 약속처럼 찾아와 호젓이 나를 기다린다!

 

20230525, 사니랑의 오금동일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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